원래 여과기 끼워서 급수기로 사용하려고 샀던 작은 어항. 하지만 물이 많이 튀기도 했고, 무거워서 아침저녁으로 물 가는 게 힘들었다. 결국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써볼까 하다가 한번 테라리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검색을 해보니 어항을 활용한 테라리움이 많았다.
우선 재료를 주문했다. 이끼와 바닥층에 쓰일 현무암, 숯, 수태, 그리고 장식용으로 쓰일 현무암 큰 것을 주문했다. 상토, 마사토는 집에 있는 걸 쓰기로 했다. 그런데 장식용 현무암 크기를 '중'자를 시켰더니 너무 큰 게 왔다. 더 작은 크기를 시켰어야 했는데... 너무 커서 따로 쓸 데도 없어서 지금도 집안 구석에 그냥 놓여있다.(안 쓰는 물건 줄이려다 잡동사니만 더 늘려버렸다.)
바닥에 넣을 현무암에서 새카만 가루가 계속 떨어져나왔다. 그대로 넣었다간 어항이 시커멓게 변할 것 같아서, 마사토처럼 씻기 작업을 해줬다. 세 번 정도 씻어줬다. 돌가루 때문에 하수구가 막힐까 봐, 씻어낸 물을 화단까지 버리러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진이 빠졌다. 힘들었다. 예전에도 몰라서 세척 안된 마사토를 한 포대 샀다가 그거 씻느라 엄청 고생했다. 싸다고 혹하지 말고, 웬만하면 세척된 걸 사는 게 최고다.
이끼를 시켰으니, 이끼 공부도 하기위해서 책도 읽었다. 이끼의 종류가 엄청 많고, 또 키우는 방법도 종류마다 다르게 해줘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 외에도 모스는 이끼와 다른 종류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책에서 보여준 예시처럼 예쁜 테라리움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비록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지만 말이다.
테라리움 만들기를 시작했다. 우선 어항 안에 바닥층을 깔아준다. 물 빠짐을 위해서 숯, 현무암, 마사토, 수태, 상토 순서로 깔아줬다. 얇게 깔아줘야 하는데, 처음이라 몰랐다. 모든 재료를 넉넉하게 깔았더니 너무 두꺼워졌다. 테라리움이 아니라 개미집 관찰하기 키트처럼 되어버렸다. 이게 아닌데... 테라리움 할 때는 쌓일 걸 고려해서 재료를 무조건 조금씩 얕게 깔아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여차저차 바닥층을 쌓고, 상토 위에 적당한 크기의 현무암(내가 시킨 건 너무 컸다.)과 이끼들을 올려줬다. 제주애기모람도 올려주었다. 이끼 구경하다가 발견했는데, 귀여운 모양과 예쁜 이름에 혹해서 바로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집에 굴러다니던 돌멩이와 고양이 피규어도 장식했다. 흡사 자연에서 명상하는 고양이의 모습 같았다.
이끼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남은 유리 화병에 테라리움을 하나 더 만들어줬다. 똑같이 욕심 부려서 바닥층을 잔뜩 깔아줬더니 모양이 예쁘지는 않다. 보기 좋게 만드는 재주는 역시나 없었다.
완성하고 나니 내 마음에는 쏙 들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집에 작은 초록 숲이 생긴 느낌이었다. 머리맡 책장에 두니 공기도 맑아질 것 같은 느낌.
며칠 동안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 표면과 현무암에 거미줄 같은 새하얀 얼룩이 끼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싶어서 유심히 보니,
흙 속에 꾸물거리는 하얀 덩어리들이 보였다.
구더기가 생긴 것이었다. (으악!!!!!!!!!!)
바로 이끼랑 바닥층 전부를 갖다버렸다. 혹시라도 부화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거나 다른 화분에 알을 까기라도 한다면... 어휴... 생각도 하기 싫다. 도대체 뭣 때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상토가 문제인 것 같았다. 예전에 사둔 걸 썼는데, 따로 소독을 하지도 않았고 흙 속에 가시나 나무조각이 많아서 만지기만 하면 꼭 손에 가시가 박혀있어서 애먹었다. 나중에 남은 제주이끼모람을 키울 때에는 똑같이 바닥층을 만들되, 흙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넣었다. 몇 주가 지나도 구더기는 생기지 않았다. 흙이 원인이 맞는 것 같다.
남은 흙이 꽤 돼서 차마 버리지는 못했고, 쓸 때마다 번거롭게 전자렌지에 돌려서 써야 했다. 다시는 포대로 나오는 상토는 사지 않으리. 앞으로는 소독됐다고 쓰여있는 다이소 흙을 조금씩 사다가 써야겠다.
결국 테라리움 만들기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식물 못 키우는 사람에게 이끼 돌보기는 고난이도의 일인 것 같다. 이끼의 특성이 다 달라서 한꺼번에 배치해서 키우기가 어렵고, 오히려 식물을 심지 않으니 습도 유지가 잘 안 되기도 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제주애기모람을 살려보려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바닥층을 테라리움과 비슷하게 넣고 수태를 맨 위에 깔아줬다. 유리뚜껑도 덮어서 습도 유지도 하고, 물도 한 번씩 줬다. 근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노랗게 변한다? 열심히 영상 보고 공부를 했는데도 왜일까.
제주애기모람은 정말 키우기 쉬워서, 제주애기모람을 죽일 정도면 식물을 키우면 안 된다고 하던데...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걸 보니, 나는 아무래도 식물 키우기에는 소질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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