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에 작성했던 글)
드디어 그림책 원화 스무장이 완성되었다. 워낙 그림 실력이 엉망이라 차마 완성했다고 하기에는 처참한 그림들이지만, 완성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쁘다. 중도에 그만두는 게 습관인 내가 완성을 하다니...! 감격스럽다.
내 그림은 디지털 방식이 아닌 손그림이기 때문에 스캔해서 그림 파일로 옮겨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나, 수채화 물감을 써서 배경색을 옅게 칠했기 때문에 일반 스캐너로는 색이 다 날아가버린다. 드럼스캔이 필수다.
예전 더미북 작업할 때 단체로 갔던 스캔 업체는 출판도 같이 하는 곳이라 그런지 단가가 저렴했는데, 사이트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업체를 검색해서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드럼스캔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업체 사이트를 보니 스캔 비용도 명시되어 있고, 최근 게시판 문의글도 꾸준히 올라와 있었다. 다른 블로그들에서도 드럼스캔하는 곳으로 많이 소개되어 있기도 했다. 업체명은 이지컴이고,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scanphoto.co.kr/ 이다. 근데 크롬에서는 보안경고 뜨면서 들어가지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잘 열린다.
혼자 해보는 건 처음이라 많이 떨렸는데, 다행히 문의 전화를 했을 때 사장님이 친절하게 응대해주셨다. 홈페이지에 나온 단가와 전화로 물어봤을 때의 금액도 같아서 다행이었다. 접수 방법은 택배로도 가능하고 직접 가도 된다. 전화로 방문 예약을 하고 그림을 들고가면, 바로 드럼스캔을 해준다. 시간은 1시간 30분~2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하루라도 편집할 시간을 벌어야해서, 직접 그림을 싸들고 방문하기로 했다.
막상 그림을 가져가려고 하니, 마땅한 가방이 없었다. 그림에 손 놓은 지가 5년이 넘었으니... 예전에 같이 그림책 그림 공부했던 작가님이 만들어 준 봉투를 사용하기로 했다. 겉에는 종이 곰팡이가 약간 피었지만, 안쪽에 넣어놓은 종이는 멀쩡했다. 길어봤자 3시간 정도만 그림을 넣어놓을 거니까 그냥 썼다. 이동 시간이 길어서 새로 만들 시간도 없었고, 사실 어떻게 만드는지 까먹었다...ㅎㅎ
예약 시간보다 약간 이르게 을지로에 도착했다. 근데 네이버 거리뷰에 나온 사진 속 건물은 아무리봐도 단층인데, 홈페이지에 나온 사무실 주소는 5층이었다. 사진 속 건물에는 플라스틱 업체만 있었고, 당황해서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리 봐도 가까운 건물 중에 5층짜리로 보이는 건물은 바로 옆건물 밖에 없는데, 1층 편지함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있고... 그냥 올라가자니 계단만 있고, 으슥해서 무섭고... 또 밖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건물로 들어갔다. 다행히 5층에 올라가니 스캔회사의 간판이 문앞에 붙어있었다. 휴... 나중에 다른 지도로 찾아보니 주소지가 아니라 앞쪽의 삼각형 건물로 안내를 했던 것이었다. 네이버 거리뷰만 믿었다가 한참 고생했다.
들어가보니 큰 드럼스캔 기계가 한대 있고, 컴퓨터가 있는 작업 공간, 맞은 편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대표님 한 분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예전에는 드럼스캔 기계를 3대까지도 갖고 계셨는데, 스캔업 시장의 변화 및 기기 수리 문제로 1대만 남았다고 한다. 기계의 원산지인 독일·영국에서도 이제는 생산이 중단되어 부품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고장나도 고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지금 있는 기계도 다른 업체에서 버리는 기계의 부품을 겨우 구해서 고친 거라고... 예전에 드럼스캐너가 포토샵 등 디지털 기기의 역할을 대신하는 역할을 했을 때는 기계 하나당 5명 이상의 직원이 붙어서 일을 했을 정도라고 하니, 꽤나 크게 번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일도 많이 줄고, 많이 어렵다고 한다. 어떤 업종이든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게 느껴져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드럼스캔이 필요한 일이 더 줄어들고 업체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면, 이제 손그림을 그리더라도 디지털화 할 방법이 없어져서 어쩔 수 없이 손그림을 포기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 같다. 좀 서글퍼졌다. 아무리 디지털로 대체가 된다 하더라도만 손그림만이 주는 느낌까지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관련 일을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는 큰 타격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사회가 변하면서 더 신속해지고 편리해지는 부분도 많아졌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부분이나 부작용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처음 방문한 기념(?)으로 대표님이 드럼스캔 기계의 원리와 작동 방법에 대해서 꼼꼼히 설명해주셨다. 드럼스캔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업체를 운영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계의 스캔 시작 버튼을 내가 직접 누르기도 해봤다. 혹시라도 뭔가 잘못될까봐 덜덜 떨었는데 다행히도 스캔은 아주 쌩쌩하게 잘 되었다.
을지로라 좀 거리가 있다보니, 나중에 찾아오기 힘들 때는 그냥 그림을 택배로 부쳐야겠다. 대표님 실력과 열정은 직접 눈으로 봤으니ㅎㅎ 믿고 보내도 될 듯 하다. 스캔할 그림을 부칠 때는 꼭 박스를 쫙 펴서 그림을 넣고, 모서리와 접히는 부분마다 테이프를 붙여서 접지 못하도록 해서 보내야한다. 주의 문구를 넣으면 더 좋다. 만약 일반적인 택배 보내듯이 박스에 완충재를 넣는 방법으로 하면 그림이 구겨져버린다고 한다.
조금 이야기가 길어져서 2시간이 약간 넘어갔는데, 이래저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오히려 책꽂이에 꽂힌 다른 그림책이나 다른 스캔작업 의뢰물들을 보니 내 그림실력의 처참함이 더 느껴져서, 나 혼자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대충 그린 그림이 티가 나서 부끄러웠다.
스캔 작업이 다 끝나고 대표님께 맛집 추천을 받아서 한 번 가봤다. 한식 중에서도 한참 기다려야하는 너무 유명해진 맛집은 제외, 또 밥을 먹어야하니 술을 먹는 분위기인 집들은 제외하고, 가까운 갈비탕집으로 추천해주셨다. 상호는 부산 갈비. 냉면을 좋아해서 냉면과 갈비탕이 같이 나오는 세트 메뉴로 시켰다. 가격은 15,000원. 갈비탕과 가격이 같다. 대신 갈비탕 양이 줄어들고 그만큼 냉면을 준다. 갈비탕은 누린내도 안 나고, 평소에 먹던 갈비탕의 맛이 나서 먹기 괜찮았다. 특이한 점이, 소고기로 된 작은 완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고기를 잘못 썰어서 떨어져 나온 줄 알고 '뭐야? 잘못 된 건가?' 이러면서 살짝 걱정하면서 먹었다. 근데 다 먹고나서 벽면을 보니 그 갈비집 만의 특이한 고기 완자라고 적혀있었다. 미리 읽었다면 사진도 찍고 더 맛있게 먹었을텐데... 같이 시켰던 냉면은 가위로 잘리지 않을 정도로 면이 끈적거려서 좀 아쉬웠다. 앞으로는 갈비탕만 단독으로 먹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제 그림 스캔이라는 큰 산은 하나 넘었고, 이제 편집이라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산이 남았다. 드럼스캔이야 예전에 따라가서 얼추 어떻게 하는지는 배웠다지만, 편집 쪽은 아예 모르는데다가 가볍게 배웠던 내용도 다 까먹었다. 과연 예정일에 맞춰서 책을 출판할 수 있을지... 앞으로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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