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그림책이 나왔다!
그림책 독립출판을 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지 1년여 만에... 드디어 내 그림책을 출판했다.
글, 그림, 편집 모두 오롯이 내 힘으로 한 나만의 그림책!
그림을 예쁘게 그리지도 않았고, 글 솜씨도 좋지 못해서 별 기대 없이 그림책을 찾으러 갔었다. 근데 인쇄소에 도착하고보니, 생각보다 책이 예쁘게 잘 나왔다.
사실 인쇄 비용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3배 가까이 뛰었다. 게시판에 글 올리고 전화로 견적을 받을 때는 얼추 예상했던 금액이었다. 책 표지는 많이 쓰는 아트지로 하고, 내지만 랑데뷰지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편집파일을 보내고 나니, 쨍한 색을 그대로 살리려면 표지 종이를 두꺼운 랑데뷰지로 바꾸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들었다. 아무래도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게 낫다 싶어 표지 종이를 바꿨다. 대신 비용이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싸졌다. 당연히 하드커버는 꿈도 못 꿨다. 처음부터 소프트커버를 할 생각이긴 했지만, 소프트커버인데도 이렇게 비쌀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책을 찾으러 가서 처음 확인했을 때는, 색깔이 차분하면서도 생기있게 잘 나와서 '아... 비싼 종이는 역시 비싼 값을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다음 책도 계속 고가의 종이를 사용했다가는 생산 원가가 너무 비싸져, 아예 판매 자체도 불가능할 것 같다. 비록 소량 인쇄이지만, 원가가 권당 4만 원을 넘어가니... 아무리 권수를 늘린다고 해도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 내에서 해야 할 텐데, 원하는 판매가까지 낮추기는 힘들 것 같다. 다음 책도 같은 방식이라면, 월급을 그대로 다 인쇄비로 털어 넣는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내자마자 바로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리도 없고... 다음 책에는 그림과 배경을 적게 넣고, 색도 가라앉혀서 모조지로 인쇄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인쇄가 완벽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내 실수 때문이다.
그림 단체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내 그림책도 함께 함께 전시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림 외에 추가로 책 전시도 가능하다고 들었다. 어떻게든 전시회 날짜를 맞추기 위해, 하루만에 급하게 인쇄를 맡겼다. ISBN 바코드도 승인이 나지 않아서 책 뒷면에 넣질 못했다. 그런데 인쇄를 맡기고 나서 핸드폰으로 파일을 확인하니, 그림을 붙여넣기한 자국이 있는 걸 발견했다. 모니터에서는 티가 잘 안 났는데, 색이 밝은 휴대폰 화면에서는 눈에 확 띄었다. 급히 인쇄소에 전화하니 이미 인쇄를 넣었다한다. 어쩔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아쉬운 마음을 추슬렀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건, 인쇄된 책을 받아들고 제출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책 전시를 할 인원이 적으면 받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결국에는 인원 미달로 전시를 할 수가 없었다. 책 제출 관련 문의를 했을 때 언질을 줬더라면, 아니면 며칠 전에라도 미리 얘기를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날짜 맞추겠다고 인쇄를 급히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바코드도 넣어서 인쇄했을 테고, 파일을 더 꼼꼼히 훑을 시간이 있어서 편집 실수를 발견해서 수정했을 것이다.
비싼 돈을 주고 맡긴 첫 책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심정이란... 그것도 내 실수로... 참담했다. 거의 2주 가까이 매일 악몽을 꿨다. 책 인쇄를 맡기겠다는 전화를 반복하는 꿈, 책 뒤의 바코드 스티커를 계속 떼었다 붙이는 등의 꿈이었다.
무슨 일을 할 때 급하게 해서는 안되고 주변에 휘둘리지 말아야한다는 걸 알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까.
처음에 한 실수때문에 한 달 가까이 고생했다. 바로 ISBN바코드 때문이었다. 급히 인쇄한다고 책에는 바코드를 넣지도 못했고, 도서관 납본 때문에 바코드는 넣어야겠고... 게다가 책 뒤표지에는 바코드 넣을 자리를 생각하고 그림을 배치해서 인쇄를 한 거라, 그냥 두자니 책이 비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늦게라도 바코드를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자르면 당연히 비뚤어져서 보기 좋지 않을 게 뻔했다.
처음에는 바코드 스티커를 주문제작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소량이라 주문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검색해서 소량 주문, 다양한 종이재질 주문도 받는다는 스티커 업체에 문의했다. 30개에 3만원 약간 안 되는 금액. 하지만 업체의 안내대로 상세히 견적 요청 내용을 적어 보냈는데도 잘 읽지도 않았다. 이미 보낸 내용에 있는데도 타박 주듯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재질이 가능하냐고 물었는데도 아무 말 없더니, 나중에는 마음대로 재질을 바꿔서 견적을 줬다. 차라리 처음부터 안된다고 했으면 재질을 바꾸겠다고 할 텐데, 가타부타 말도 없이 갑자기 바꿨다는 점에서 실망했다. 1차 포기.
다음에는 블로그를 검색해서 소량도 받아준다는 업체에 견적 문의를 해봤다. 20개에 비용이 4만원이 넘었다. 같은 재질에 같은 크기였는데도 말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 포기.
결국 라벨지를 구입해서 직접 인쇄하고 잘라서 붙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중에 있는 라벨지는 바코드 크기보다 훨씬 큰 사이즈밖에 없었다. 바코드 크기를 키우자니 너무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영 보기에 좋지 않았다. 라벨지 중앙에 바코드를 작게 넣고 손으로 사방을 자르는 수밖에 없었다. 깔끔한 재단선은 포기해야 했다. 재질도 일반 모조지, 코팅지 다 써보고 무광 코팅지로 결정. 무광이라고 해도 광택이 있어서 책에 붙이면 번들거려서 눈에 띄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반 모조지는 습기가 있으면 지워져 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겨우겨우 정해서 라벨을 주문했는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라벨지 회사에서 제공하는 파일에 맞춰서 인쇄했더니 아예 밀려나면서 종이 여러 장 버리고, 한글파일에 바코드 파일을 넣으면 멋대로 확대되는 걸 모르고 그대로 인쇄했다 몇 장 또 버리고... 버려진 라벨지는 계속 쌓이고... 퇴근하고 나서 쉬지도 못한 채 계속 바코드 넣어보고 잘라보고 버리고.... 이 짓을 일주일 간 반복했다. 매일 밤 바코드 스티커 인쇄하고 자르고 붙이는 악몽을 꿨다.
평소에도 선 하나 긋는 것도 수평, 수직 못 맞춰서 삐뚤빼뚤한 나인데... 바코드 잘라서 붙이기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 완벽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했다. 여차저차 타협선을 정하면서 바코드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엉성하긴 해도, 바코드 스티커까지 다 붙이고 나니 책 모습을 갖춘 것 같았다.
말도 안되는 실수도 많았고, 잠도 못 잘 정도로 고생한 그림책 만들기. 실수투성이에 엉성한 우당탕탕 그림책 독립출판 작업이었다. 인쇄만 맡기면 다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생각지도 못하게 꼬이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어째 그림책 인쇄 전보다 인쇄 후가 훨씬 힘들었던 것 같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 절대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내 이름을 내건 그림책 한권을 출판했다는 게 정말 감격스럽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책을 예뻐해 줘야겠다.
오늘 밤에는 발 뻗고 푹 잘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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