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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독립출판/콩들의 싸움

내가 그림책 독립출판을 포기한 이유

by 러울이 2024.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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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약 1년동안 준비했던 그림책 독립출판을 포기했다. 그림책 인쇄 및 isbn 등록까지는 마쳤으나, 결국 유통과 판매는 못했다. 개인 비용으로 출판하고, 출판 과정을 직접 경험해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포기한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인쇄 비용, 그림책의 판형 및 편집의 문제, 느린 속도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적었다.
 
1. 인쇄 비용
 그림책 인쇄 비용이야말로 가장 큰 벽이었다. 그림 품질을 최대한 살리려면 좋은 재질에 두꺼운 종이를 써야한다. 그런데 그러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장 좋고 두꺼운 종이에 제본방식도 그림에 맞춰서 무선제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했더니 권당 약 4만원(!)의 인쇄비가 나왔다. 비용이 더 드는 양장본(하드커버)은 꿈도 못꾸고 표지도 소프트커버로 했다. 소장용이라고 해도 큰 부담이 된다. 

그림책_표지_사진
비용때문에 소프트커버 표지로 인쇄한 내 그림책

 그림의 출력 품질이 낮아지더라도, 제일 저렴한 종이로 바꾸고(제본방식도 바꿔서 무선제본을 하려고 하니 안된다고 하더라) 100권 정도를 인쇄하려고 견적을 문의하니 권당 단가가 약 2만원이었다. 한번에 약 2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초기 투자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다. 팔릴 지도 모르는 책에 몇백만원을 단번에 쓰기란 어렵다.
 
  만약 인쇄비용을 감수하고 판매하겠다고 계산해봐도 문제가 있다. 독립서점에 직접 납품하는 걸 가정하고 판매가의 70%를 반영, 원가만이라도 남기려한다면 그림책 1권당 약 2만 9천원의 가격을 책정해야한다. 전혀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그림책을, 그것도 양장판(하드커버)도 아닌 소프트 커버의 그림책을 2만 9천원이라는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냥 인쇄비용 몇백만 날리고 끝날 결말이 빤히 보였다. 
 
 
2. 그림책 판형 및 그림 편집의 문제
  또 다른 문제는 그림책 판형이었다. 이건 내가 출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학원에서 배운 방식(판형)으로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긴 하다. 그림책을 그릴 때는 기본적으로 정사각형 모양의 판형을 쓴다. 출판사와 계약 할 때는 비교적 자유로운 판형을 쓸 수 있다. 하지만 판매를 염두에 둔 독립출판을 생각한다면 정형화된 판형이 아닌 특수 판형은 나쁜 선택이었다. 인쇄비용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유통·판매 대행업체에 의뢰할 때도 특수 판형은 안 받는 곳이 많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인쇄해서 판매해주는 교보문고의 바로출판도 이용해보려했다. 책 값의 20%만 받을 수 있지만 초기비용이 들지 않고, 책 보관 공간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책 판매 여부가 불투명한 나같은 무명 작가들에게 유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정해진 판형(A4, B5, 크라운판 등) 이외에는 아예  등록 자체가 불가능했다. 비용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나는 양면을 이어서 하나의 그림으로 그린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림책 작업을 하다보니, 중간의 접지선을 고려한다고 그렸지만 나중에 편집을 해보니 접지선까지 그림이 다 들어가는 구도로 그림을 그렸다. 이건 정말 큰 실수였다. 그래서 인쇄 때 제본 방식도 저렴한 무선제본으로 하려다, 인쇄소에서 절대 안된다고 해서 포기했다. 인쇄소 측에서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그냥 안된다고만 했는데, 아마 그림이 접혀들어가는 것 때문인 것 같았다.(인쇄 쪽은 잘 모르는지라 혼자 추정한 이유일 뿐이다.) 결국 쫙 펴지는 제본방식으로 하다보니 비용도 거의 2배 가까이 나왔다.

ebook_화면
망해버린 이북 편집

 
 이북(e-book)도 고려해봤으나 한장한장 끊어지게 보이는 모바일 어플 화면 특성상 그림책을 온전히 구현할 수 없었다. (내가 프로그램을 잘 다루지 못하고 겨우 기본만 할 줄 안다는 문제도 있다.) 특히나 내 그림책은 양면이 이어지게 봐야하기 때문에, 모바일로 한장씩 보니 흐름이 뚝뚝 끊겼다. 다음에는 이북까지 고려해서, 양쪽을 모두 다 쓰는 그림은 아예 빼버릴 거다. 그림을 한쪽씩 끊어서 그리거나 글과 그림을 단면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업할 예정이다. 접지선 부분은 넉넉하게 비워두고, 양면보다는 단면으로 나눠서 내용을 배치하기 그리고 많이 쓰이는 판형에 맞춰 작업할 것! 내 실수를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부분이었다. 
 
 
3. 느린 속도
 글과 달리 그림은 수정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든다. 특히 손그림은 부분 수정이 불가능하다시피해서, 다시 처음부터 그려야 한다. 그렇다고 처음 그림보다 더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종이 자르고, 배경색 칠하고, 색 맞추고 구도 맞춰서 그림을 완성하더라도 마음에 안들 때가 많다. 색이 묘하게 달라지거나, 느낌이 달라져서 오히려 처음 그림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는 많게는 5~6장까지 다시 그려야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거치고나면 정말 진이 빠진다. 빨리 수정해도 모자랄 판에 며칠~길게는 몇주까지 걸릴 수도 있는 작업을 계속 반복하는 건 어렵다. 특히나 독립출판은 주변에서 도와줄 사람없이 혼자서 끝까지 모든 과정을 해야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 완성 하기도 전에 수정 과정에서 지쳐서 나가떨어져버리는 것이다. 
 

손그림_여러장_사진
그동안 그린 그림들

 

학원에서는 손그림으로 그리는 방법만 배운지라 이번에는 멋모르고 손그림을 넣은 그림책을 시도했지만, 이제는 디지털로 그리는 방식도 새롭게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림책 대신, 에세이처럼 글을 주로 쓰되 일부 삽화로 들어가는 그림만 디지털로 작업하려고 한다. 
 
 
4. 그 외
 부가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독립출판으로는 작가로서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에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하면서 크게 느꼈다. 출판사와 계약한 책은 계약서와 isbn만으로 증명이 되지만, 독립출판은 계약서 대신 증명할 서류조차 없어서 별도로 연락을 해야했다. 그리고 출판 권수가 많더라도 심사 위원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통과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기존의 책 출판 방식으로는 책을 내기 어려운 작가들이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책을 낼 수 있다'는 독립출판의 의의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이전 글: 독립출판 그림책 한권으로 예술활동증명 - 실패

 

독립출판 그림책 한권으로 예술활동증명 - 실패

예전에 그림학원을 다니면서, 예술활동증명을 받으면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술활동 증명을 받으면 '나도 그림 그리는 예술인이다!'라는 증명이 되는 것 같아서 늘 부러웠다. 하지만

bomeun.tistory.com

 
 
 혼자 부딪쳐가며 독립출판을 시도해보니, 알면서 한 실수, 몰라서 한 실수, 내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었던 것 등 여러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처음이라 시간, 비용, 정신력을 소모하면서 많이 깨져보고 또 많이 배웠다. 다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실수를 최대한 줄이고, 실패하지 않을 방법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